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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진 교리 ② 마태오 복음서 입문 1 (주임신부님)

작성자 잠실7동성당사무실
작성일 22-09-29 17:14 | 838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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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진 교리 ② 마태오 복음서 입문 1 (주임신부님) 

 

 

마태오 복음서 입문

  

(Évangileselon Saint Matthiew, Introduction, in TraductionOecuménique de la Bible, Nouveau Testament, Paris 1972, pp. 37-42,신약성서 새 번역 I, 미태오 복음서, 주교회의성서위원회 편찬, 임승필 번역, 2001, 52-65). (김종수 요약).

 


1. 마태오 복음서의 서언과 결어

 

루카 복음서에는 그 시대의 그리스 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작품의 대상과 그것을 쓰게 된 동기 등을 밝히는 머리글이 있는데, 마태오 복음서에는 그러한 부분이 없다.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루카 1,1-4).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요한은 불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사도 1,1-5).

 

마태오는 예수님의 공생활 이야기를 도입하는 서론 부분(1-2)과 자기의 복음서를 끝맺는 단락(28,16-20), 곧 부활하신 분께서 단 한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간접적으로 자기 작품의 의미를 밝힌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이 발현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이 강조된다. 그리스도의 권한과 그분 제자들의 역할이다.

 


   (1) 미태오 복음서도 다른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전한다. 그러면서도 초기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다른 복음서 저자들보다 자기 나름대로 더 명백히 제시한다. 요셉에게 예고된 임마누엘”(1,23)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을 지니신 분께서 주님이시며 스승으로서 세상 끝날 때까지(28,20) 믿는 이들과 함께 계신다. 지상에 살아 계셨던 이분께서는 당신 제자들의 중개를 통하여 충만한 권한과 함께 이러한 현존을 계속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권한을 사탄이 아니라(4,8-10) 하느님에게서 받으신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그리스도께 넘겨 주시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11,27). 이러한 사실이 마태오 복음서에 매우 특징적인 전망을 제공한다.

 

구약성서에 예고된 대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배척을 받으신다. 그리하여 기쁜 소식이 다른 민족들에게도 전파될 수 있게 된다. 마태오 복음서의 서론(1-2)이 이러한 사실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이 부분은 예수님의 유년기를 전해 주고 있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유년기 사건들의 역사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들을 전해 주는 목적은 그 전통들을 바탕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분께서 이 땅 위에서 겪으신 그 운명의 의미를 밝혀 내는 데에 있다.

 

   요셉은 이스라엘과 다윗 혈통의 이름으로,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기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태어나신 분을 동방 박사들이 찾아 뵙는다. 이들은 기쁜 소식이 구원으로 초대하는 다른 민족들의 본보기이다. 반면에, 예루살렘 주민, 수석 사제들, 헤로데 임금 등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모두 그분을 배척하고 박해한다. 특히 헤로데는 아기 예수님을 베들레헴의 유아들과 함께 없애 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은 이러한 헤로데의 손아귀를 빠져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민족들의 땅을 상징하는 갈릴래아에 몸을 피한다. 이러한 극적인 역사 속에 이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예시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러한 역사는 바로 다른 민족들에 대한 복음 선포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를 마감하신다.

 

마태오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주요한 방식은 이른바 성서 논증이다. 그는 복음서 곳곳에서 구약성서를 인용한다. 이 인용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행위의 뜻이 항상 성서로써 밝혀진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기능을 가진다.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는 성서 논증을 통하여 예수님은 참으로 유다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2)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열한 사도에게, 모든 민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그들을 제자로 삼는 책임을 맡기신다. 이 첫째 복음서의 특징적인 표현, 그리고 하느님의 통치에 관한 유다교 전통에도 속하는 표현에 따르면, 기쁜 소식의 선포는 먼저 하늘 나라를 공포하는 것이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가운데에 현존하시는 통치자이시며, 특정한 때에는 당신의 그 절대적 권능과 함께 역사의 흐름 속으로 손수 개입하시는 분이시다. 그 시대의 유다인들은 우리의 임금님은 하느님뿐이시다.’라고 즐겨 말하곤 하였다예수님께서는 이 하늘 나라라는 전통적 표현을 받아 들이신다. 그러나 정치적 해방의 뜻으로 그것을 수용하신 것은 아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뜻을 잘 이해하였다마태오는 예수님을 통하여 그러한 정치적 꿈이 실현되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마태오에게는 이 하늘 나라가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통치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가 된다. 반면에, 루카 복음서나 요한 복음서에서는 이 표현이 통상적으로 재해석되어 영원한 생명이나 하늘등을 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이 표현이 두 가지 뜻을 지닐 수 있다. 보통은 통치를 의미하지만, ‘들어가다를 뜻하는 동사와 함께 쓰일 때에는 왕국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표현은 단순히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까지 그 대상으로 한다. 13장에 나오는 하늘 나라의 비유들이 그 특징들을 잘 드러낸다. 씨 부리는 사람의 파종으로 시작하는 하늘 나라는 신비한 방식으로, 그리고 중간에 마주치게 되는 갖가지 실패에도, 마지막 수확 때까지 열매를 맺어 가야 한다. 마지막 수확은 세상 종말의 사건을 가리킨다. 이러한 종말론적 전망으로 하늘 나라는 이 지상의 교회와 완전히 동일시되지 않는다. “교회”(16,18; 18,17)는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이 나라를 드러내는 표징들을 일으키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면서도, 하늘 나라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제자들의 공동체에서는 상호 존중과 봉사가 법이다(18,12-14). 이러한 공동체가 베드로와 함께 하늘 나라의 열쇠를 쥐고 있다(16,19; 18,19). 하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 공동체는 언제나 그리고 계속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6,10) 하고 기도한다.

 


2. 문학적 구성

 

마태오는 마르코 또는 루카와 공통된 원천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유사성을 기본 틀로 하면서도 마태오는 마르코와는 아주 다른 시각으로 자기의 복음서를 구성한다.

 


   (1) 앞뒤를 시간적으로 연결시키는 말마디들은 4,17 16,21 (“그 때부터”) 외에는 보통 실제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3,1 “그 무렵에”). 지리적인 언급들도 상당히 모호하여, 그것들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움직이신 상세한 여정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복음서를 읽는 이는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단순히 장면들의 모음이 아니라 어떤 역사적 생애와 만나게 된다.

 

마태오는 이야기나 예수님 말씀의 앞뒤 틀을 같은 낱말로 짜기를 좋아한다(6,19 6,21; 7,16 7,20; 16,6 16,12). 그리고 동의적 또는 반의적 병행법을 교차 배열법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16,25). 또 거침없이 상투어를 되풀이하고(8,12; 22,13; 25,30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동일한 사실을 가리킬 때에는 같은 표현 방식을 다시 쓰며(8,2; 9,18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하고 말하였다.”(9,4; 12,25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이르셨다.”). 주저하지 않고 같은 말씀을 여러 사람이 하는 것으로 전하기도 한다(3,2;4,17; 10,7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오의 이야기들은 대체로 짧은 것이 특징이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마르코의 특성이 사라지고, 대신에 간결하고 엄숙하기까지 한 교리교수적인 제시 방법이 들어선다(마태 8,14; 마르 1,29-31 비교). 마태오는 또 일정한 수에 따라서(특히 7이나 3 또는 2를 좋아한다.), 또는 이른바 고리-낱말’, 곧 둘 이상의 구나 절 안에 배치되어 그 구나 절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구실을 하는 낱말에 따라서(18,4-6어린이작은 이”) 자료들을 모아 가기를 상당히 좋아한다.

 

마르코와 루카는 자료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으로 그치는데 반해, 마태오는 더욱 깊은 뜻에 따라 말씀과 이야기를 편집한다(마태 8,5-13; 루카 7,1-10; 13,28-29 비교). 그리고 비슷한 내용의 가르침을 즐겨 한데 모아 놓는다. 이렇게 하여 그는 주님의 기도’(6,7-15)를 사전에 잘 배합한 틀(6,1-18) 속에 집어 넣는다.

 

마태오는 또한 8,1-17기적 모음에다 두 번에 걸쳐 일현의 다른 기적들을 덧붙인다(8,23-9,8; 9,18-34). 사람의 아들의 운명에 관한 세 번의 예고(16,21-23;17,22-23;20,17-19) 사이에도 여러 주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삽입한다(18,5-35; 19,1-20,16).

 

   끝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담화’(가르침 discours)라고 하는 것들을 모아 놓은 다섯 단락’(les cinq ensemble)이 눈에 뛴다. 이것들이 마태오 복음서의 뼈대를 이룬다. 각각의 뼈대는 설교가 끝난 뒤에 배치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다.’라는 말이나(7,28), 그와 비슷한 문장으로 드러난다(11,1; 13,53; 19,1; 26,1 참조). 마태오는 이런 방식으로 하늘 나라의 의로움’(5-7), 하늘 나라의 선포자들(10), 하늘 나라의 신비(13), 하늘 나라의 자녀(18), 그리고 하늘 나라의 궁극적 도래를 기다리는 동안에 요구되는 깨어 있음과 성실성(24-25)을 잇달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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