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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진 교리 ④ 마태오 복음서 최후의 심판 1 (주임신부님)

작성자 잠실7동성당사무실
작성일 22-10-16 10:16 | 702 | 0

본문

  

견진 교리 ④  마태오 복음서  최후의 심판 1 (주임신부님) 


마태오 복음

2. 최후의 심판(25,31-46)

   최후의 심판에 관한 구절을 묵상하자.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 해 준 것이다.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25,31-46).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변명하려 하지 말고, 사람의 아들 오른쪽에 선 사람들이 했듯이 그렇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야 한다. 이 대목은 우리 영성의 원리와 기초가 되는 말씀을 담고 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해 가면서 이 세상에서 날마다 선택해야 하는 삶이 있다.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은 그때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활동에 관한 지침을 주고 있다. 

   최후의 심판에 관한 대목은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온다. 다른 공관 복음서에는 병행구가 없다. 이 점만으로도 교회의 복음서라고 하는 마태오의 고유한 신학을 담은 구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오가 그리스도의 칭호를 모아 놓은 대목이기도 하다. 사람의 아들, 임금, 목자, 주님 등. 

   이러한 칭호들은 저 분이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분을 중심으로 인간들의 모든 결단이 이루어지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그분과 연관을 갖고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세상에서 우리가 한 행위는 그저 지나가고 잊혀지는것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에 사는 동안 행한 모든 행위에 대해 그분 앞에서 셈을 해야 한다. 심판은 우리의 지식이나 명예, 축적한 부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우리는 심판 때에 굶주리는 이, 목말라 하는 이, 나그네,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를 어떻게 대했느냐에 대해 질문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심판의 잣대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성서 해석의 문제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성서 본문은 마태오 복음서 안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예수님과 가난한 사람이 완전히 동일시되는 유일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고, 시대에 따라 해석도 바뀌어 왔다. 이 구절을 바탕으로 무신론 신학을 펼친 이들도 있다. 그들은 하느님을 꼭 알 필요는 없고 선업을 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어느 한 면만을 과장하는 일이 없어야 이 구절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구성

   본문의 구성은 상당히 명확하다. 사람의 아들이 등장하여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고 모든 민족들이 그분 앞으로 모인다. 여기에서 모든 민족이란 온 인류를 가리킨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선포된 다음의 이야기이며, 따라서 모든 인간에 대한 심판이 내려진다고 본다. 사람의 아들이 나서서 그분 앞에 모인 모든 사람을 갈라 놓는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갈라 놓듯이 그들을 가른다. 

   그 다음에 일방적인 심판이 내려진다. 임금이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25,34). 이어서 이 심판의 이유가 밝혀진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25,35-36). 언제 그랬느냐는 의인들의 물음에 임금의 답변이 따른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25,40). 

   왼쪽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와 완전히 대칭을 이룬다. 임금이 이들에게 말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25,45).

주요 메시지 분석

   이 대목이 주는 가르침은 사람과 사람의 아들 사이의 관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대인관계와대신관계는 상호 연관이 있다. 인간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는 인간이 인간과 맺는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사람들, 세상에서 가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을 당신과 동일시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을 알아보는 일과 지극히 보잘것없는 이들, 작은 이들을 돌보는 일이 같은 것이 된다.

최후의 심판에서 내가 설 자리

   최후의 심판에서 내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아무도 제삼자가 되어 심판의 구경꾼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어느 한 쪽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주님의 판정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심판의 날이 두려워 차라리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게 해 주십사고 청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오른쪽에 서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왜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하며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우리가 만나는 이웃과의 관계는 늘 갈등을 빚고, 방어적이고, 우리는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애쓴다. 또 우리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점잖고 체면을 세우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 자신을 내세우는 술수를 부리며 산다. 우리에게 이웃이란 우리의 오죽잖은 선행을 베푸는 대상이요, 잠시 잠시 우리의 선량함을 드러내는 상대일 뿐이다. 정작 우리는 의인들의 대열, 오른쪽에 설 수는 없을까? 우리는 장님, 귀머거리로만 살아가야 할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삶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까? 

   오늘의 비유는 우리에게 우리의 온 생애, 세상의 의미를 묻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행하는 그것들은 다른 사람과 세상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우리가 거부하고, 소홀히 해 버린 모든 장면들은 정말 그래도 되는 것들이었을까? 

주님께서 우리의 임금으로서, 목자로서, 사람의 아들로서, 우리 인생의 열쇠를 쥐고 계신 분으로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인 역사를 만들어 가는 세상 안에서, 또 교회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범사, 범용에 우리를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 안에서 주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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