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본당주보 월중행사 행사앨범 행사동영상 자유게시판 자주하는질문 설립25주년 설립25주년소식

견진 교리 ④ 마태오 복음서 우리의 죄 2 (주임신부님)

작성자 잠실7동성당사무실
작성일 22-10-16 10:13 | 595 | 0

본문


견진 교리 ④  마태오 복음서  우리의 죄 2 (주임신부님) 

3. 우리의 죄 

주님,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이 저희 가운데 충만함을 느낄 수 있게 하소서. 주님과 이웃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보다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급해 하거나 모든 것을 당장에 알아 듣겠다며 서둘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

질서와 세상에 대한 인식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질서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질서란 세상과 사람, 사물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의 정도를 말한다. 우리가 형제와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주리고 헐벗고, 감옥에 갇히고 병든 형제를 제때에 알아 보지 못하는 것은 사물을 보는 방식과 행동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질서 인식에 따라 사물을 보고 행동한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인식, 곧 우리를 타성과 관습과 상황에다 묶어놓는 모든 것, 시급하고 절실한 것을 보지 못하게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 중요하다. 주님의 마음과 눈으로 다른 사람과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께서 세우신 질서는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눈으로 그들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마태오 복음서를 바탕으로 참회의 길을 걸어 보려는 것이다. 그것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서, 곧 각 형제나 어떤 단체나 공동체, 자기가 사는 환경에 대해 책임을 지닌 사람으로서 참회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파스카 신비에 눈길을 돌리면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우리 묵상에 결정적인 빛을 비추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알아 뵙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가정하고 심판 때에 우리에게 내려질 질책을 헤아려 보자.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심판의 예행 연습을 시키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게 물어 보자. 

   이 묵상에 도움이 되도록 예수님의 말씀 세 편을 먼저 주의를 기울여 읽어 보자.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성안으로 되돌아가실 때에 시장하셨다. 마침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다. 그러나 잎사귀밖에는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 나무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이제부터 너는 영원히 열매 맺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자 나무가 즉시 말라 버렸다(21,18-19).

   모래 위에 세워진 집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7,24-27).

주님, 주님!한다고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7,21-23).

   이 세 대목을 제시하는 까닭은 기도하는 자세로 한 대목, 한 대목을 살펴 각자가 그 상황에서 어떤 입장에 설지 반성하기 위함이다. 우리 각자는 복음의 이 말씀들이 바로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씀임을 깨닫도록 촉구 받고 있다.

   이 세 편의 말씀을 깊이 생각한 다음에 우리 질문에 답이 될 만한 또 다른 비유 세 편을 설명하고자 한다. 25장, 22장, 13장에 나오는 비유들, 곧 탤런트의 비유, 혼인 잔치의 비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그것이다. 마태오는 이것을 교리 교육의 자료로 썼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숙고하는 데 이용하는 것이다. 

세 편의 엄한 말씀

   세 편 모두 매우 엄격한 말씀이다. 그러나 기도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갖추게 한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21,18-19)

마태오의교회관에서 이 무화과나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도 오늘 열매 맺지 못하는 절기를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잎이 무성한 나무, 많은 회합과 장시간의 토의, 거기에서 나오는 많은 말들, 그리고 결정. 화려한 외양 뒤에는, 번드레한 말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결과는 얼마나 좋고 많은 열매를 맺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결심하고 각오도 다진다. 잎사귀는 무성하나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오늘 복음의 무화과 나무와 우리의 삶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우리가 한평생 살아가며 이루려고 했던 것과 실제로 이룬 것 사이에서 발견하는 차이는 얼마나 큰가? 날마다 듣는 주님의 말씀, 그 말씀은 우리의 실제 삶 안에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빈 소리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모래 위에 세워진 집(7,24-27)

   예수님께서는 집을 짓는 두 사람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한 사람은 일하고, 또 다른 사람은 놀고 먹는 얘기가 아니다. 두 사람이 집을 짓는데,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다른 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는 말씀이다. 어떤 집이 튼튼한지는 큰 비가 오면 안다. 큰 일이 닥치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소유에 갑자기 불안을 느낀다. 그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안절부절한다. 폭풍이 닥치면 그토록 수려하고 장대하게 보이던 거목들이 쓰러지는 것을 우리는 본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7,21-23)

마태오의 교회는 어떠한 상황에서 이 말씀을 기억했을까? 거짓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마태오의 공동체에 논란이 생기자 역사적인 해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 교회 상황을 생각하며 이 구절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불법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선언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을 꾸중하실까? 그런 일을 한 것만으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에 부족한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7,21).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면서도 자만심, 지배욕에 가득 찬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자기의 성공을 위해 일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변화되고 거룩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다음 세 편의 비유를 읽으면서 우리 문제의 답을 찾아 보자.

혼인 잔치의 비유  습관의 무게

첫번째 비유는 마태 22,1-14에 나오는 혼인 잔치의 비유다.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다.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풀었다. 왕자의 혼인인 만큼 잔칫상은 풍성했을 것이다. 이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22,5) 그들이 하던 일을 하러 갔다.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22,5). 

   예수님께서는 무슨 뜻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우리는 일상의 습관적인 삶에 젖어 일상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할 때가 많다. 당연히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폈어야 하는 사람들도 우리의 눈은 보지 못한다. 늘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냥 지나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주의를 일깨워 말씀의 촉구에 귀를 기울이고 실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최후 심판의 장면에서 재판관에게 항의를 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25,44) 그 사람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이렇게 지나치는 일에도 우리는 습관이 되어 있다. 

탤런트의 비유  모험을 두려워함

   예수님께서 탈렌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보았듯이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과 습성을 바꾸려 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꺼린다. 더구나 조금이나마 보장된 무엇이 있고, 그 나름대로 안주할 만한 것이 있으면 변화를 싫어한다. 탤런트의 비유는 이처럼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리를 꾸짖으신다. 한 탤런트를 받은 종은 땅을 파고 그 돈을 묻어 두었다. 어떻게 보면, 이 종은 정직한 사람이기에 한 푼도 제 몫으로 챙길 마음이 없었다. 그런 유혹이 들까 봐 돈을 땅에 묻었다. 돈놀이도 하지 않았고 장사 밑천으로 쓰지도 않았다. 주인은 그 종에게 호통을 쳤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25,26) 주인의 심판이 그에게 내린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25,30).

   그 종은 아마도 주인이 없는 동안에도 밭일이나 가축 치는 일을 충실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호통과 꾸지람은 지나친 것 아닌가? 그 종은 주인을 배신하지는 않았다. 도덕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 종은 잘못한 게 없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관점은 다른가 보다. 예수님께서는 모험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나무라신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좋은 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험에 대한 두려움?

   우리에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망설임이 있다.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좋은 일을 하는 데에도 망설이게 한다. 그래서 결단을 내려 일상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부부 사이에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되면 서로 탓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을 부추겨 무엇이든 하게 하려고 하지만, 남편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도 모른다고 아내를 비난한다. 이런 다툼은 새로운 일처럼 반복된다. 그러다가 둘의 관계는 무관심으로 떨어진다. 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손쉬운 자기방어의 길일 수 있다. 어느 정도 자신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해 주는 현재에 머문다. 다른 사람들과도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그들에게 무관심해진다. 우리가 형제에게서 주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모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움츠려 들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둔감하게 만든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조급함과 세상 걱정

   예수님께서는 차근차근히 교리 공부를 시키신다. 그대가 나를 알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마태 13,3-23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떠오른다. 여기에서는 18-23절, 그 중에서도 22절에 주목할 것이다. 이 비유의 한 측면만 보려는 것이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13,22).

   예수님께서는 세상 걱정(ἡ μέριμνα τοῦ αἰῶνος)과 재물의 유혹(ἡ ἀπάτη τοῦ πλούτου)을 꼽으셨다. 세상 걱정이란 지나가는 현재에 대한 안절부절하는 마음이고, 재물의 유혹이란 인간을 기만하고 눈멀게 하는 재물을가리킨다. 그것들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게 한다. 

이 비유를 생활에 적용하는 길

   밭을 갈아야 한다며 임금의 초대를 거절한 농사꾼을 보자. 그가 밭을 갈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대신해서 밭을 갈아 줄 것인가? 그가 아니면 밭을 갈 사람이 없다. 그는 할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까 걱정도 많다. 이러한 걱정들은 그에게 무엇이 더 시급하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한다. 그는 정신 없이 뭔가를 하면서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머릿속은 언제나 많은 걱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고 있는 일들이 정작 꼭 해야 할 일인지, 또 그 일을 하여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성찰해 봐야 한다. 그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그의 주변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들 중에는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도움을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단체에 떠 넘겨서는 안 된다. 밭에 일하러 나가는 농부나 장사하러 간 장사꾼은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할 기회를 외면하였다. 그는 그를 부르는 초대를 거절하였다. 

재물의 유혹이라는 것은 부, 재물이 가지고 있는 기만성을 말한다. 재물은 끊임없이 더 많은 재물에 욕심을 내게 한다. 재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할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돈으로 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긴다. 아이들에게도 돈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해 준다. 그러나 그 아이의 마음은 잡지 못한다. 아이가 정작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아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이런 것들이 재물의 유혹이요 부의 기만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될 것은 물질적 재물만이 아니다. 영적인 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부에 대한 과도한 욕심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영적인 부를 쌓아야 한다고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특강, 피정 등에 쫓아다니느라고 바쁘게 지낸다. 또 사회적, 문화적 부를 쌓으려고 여러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문화 강좌에 열심히 참여한다. 취미 활동도 규칙적인 일정이 된다. 그런 분주한 활동들을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런 활동들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가? 그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느끼고 있는가? 

마르타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1-42).

   내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늘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 분주함이 자기를 채워준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에게 내적으로 더욱 공허함을 느끼게 할 뿐이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목록

Total 176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