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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진 교리 ⓷ 마태오 복음서의 대단원 2 (주임신부님)

작성자 잠실7동성당사무실
작성일 22-10-08 17:43 | 586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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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진 교리  마태오 복음서의 대단원 2 (주임신부님)    

 

 

예수님의 약속

 

마태오 복음서에서 핵심이 되는 말씀은 이 마지막의 세상 끝날까지이다. 세상 끝날에 관한 이 주제는 24,3에도 나온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하여 물었다.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스승님의 재림과 세상 종말의 표징은 어떤 것입니까?” 여기에서 보면 시간적이고 역사적이며 현세적인 삶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을 연관시키고 있다.

 

   같은 주제가 비유 두 편에도 나온다. 가라지의 비유(13,39)에 추수와 세상의 종말이 언급된다. 우리의 때는 씨 뿌리고 자라는 때다. 밀과 가라지가 뒤섞여 자라듯이, 우리도 악과 선이 혼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시기에 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끝나는 날이 올 것이고 선과 악이 뒤섞인 이런 세상의 삶은 끝이 날 것이다.

 

   그물의 비유(13,47-50)에서도 같은 주제가 언급된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날을 향하여 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사는 시간적이고 역사적이며 혼잡하고 모호한 삶, 선과 악을 구분하기 어렵고, 더 좋은 것과 더 나쁜 것을 식별하기 어려운 시대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현존하신다는 보증의 말씀이다. 우리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이 순간 순간들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삶은 모호하게 보이지만 자라난다. 세상 끝 날을 향하여 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하실 당신 현존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현존에서 벗어나는 때는 한 순간도 없다. 이것을 아는 이는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을 우리는 일찍이 모세를 부르신 하느님에게서 들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탈출 3,12). 마태오 복음서는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야기에 이스라엘의 구원 체험 전체, 구세사 전부를 담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마태오 복음서는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이 이 현존의 결정적인 약속그 자체이심을 선포한다.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체험 전체를 간추린 말씀이며 또한 마태오 복음서 전체를 요약한 것이다. 마태오가 자기 복음서에 무수히 인용하고 있는 구약성서의 구절들 가운데 1,22-23(“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을 첫 구절로 선택한 데에는 까닭이 있어 보인다.

 

마태오 복음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예언으로 첫 장을 열고,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의 말씀으로 책장을 덮는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부단히 이어 온 하느님의 현존과 그 현존의 약속에 대한 결정적인 답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마태오 복음서 전체가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라고 이야기한다. 당신을 서서히 드러내심으로써, 현세적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단계적인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되셨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우리도 복음서가 제시하고 있는 그 길을 걸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깨달으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예수님 체험을 하고, 우리의 눈으로 교회 생활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한 천사의 전갈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이르기까지 긴장을 조금도 놓지 않았다. 이 긴장은 첫 장에서부터 여기 마지막 장까지 복음서 전체를 관통해 온 것이다.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

 


약속의 수신인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너희는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매우 한정된 너희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28,19)라고 이르신 그 너희이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와 함께, 또 고백하는 교회와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함께 계신다. 당신의 일을 계속하고, 당신의 제자된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교회와 함께 계신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20,19).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길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라는 말씀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먼저 지키고, 우리의 생활 방식을 통해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가르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복음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의 권능

 

   마지막 구절의 는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 파스카 신비의 그리스도,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이시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28,18) 하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역사를 손에 쥐셨다.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든지 짐작이 간다. 정말 큰 믿음이 필요했을 것이다. 제자들이 본 것은 십자가에 처형된 나약한 예수님뿐이었다. 그런데 그분께서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권한을 받았다고 하시니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권한이 예수님께 있음을 보여 준 다른 대목을 보자.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을 때 보인 군중의 반응을 전하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9,8). 이미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이러한 권한이 있음을 증명해 보여 주셨고, 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교회에 주셨고, 교회는 이 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병자를 치유하고,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복음서의 저자는 이 광경을 눈으로 보았고, 아니면 이 이야기를 적어도 전승을 통하여 넘겨 받았고, 교회 안에서 이 권한이 어떻게 행사되고 있는지 체험하였다.

 

   또 다른 구절을 하나 더 보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10,1). 죄를 용서하고 병자를 낫게 하는 예수님의 이 권한은 모두 당신의 구원 능력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권한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마태 11,25-27의 기도문을 읽어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 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계셔서 그분을 완전히 아시며, 아버지에게서 모든 것을 받으셨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권한을 교회에 주시어 역사 안에서 당신의 일을 계속하신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고, 아버지 안에 있게 된다.

 


하느님의 발현과 인간의 반응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28,17). 마태오는 이 구절을 삽입하여 이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님의 권능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 끝 날까지 세상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 각자도 믿음과 불신을 넘나든다.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는 인간 마음의 명암을 보게 한다. 우리는 우리의 무력함을 체험할 때 하느님의 권능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의 무력함이 우리를 믿음으로 이끌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제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같은 사람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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